[1부] 1화. 파라옹 호의 귀항
1815년 2월의 어느 아침, 마르세유 항구로 배 한 척이 미끄러져 들어왔다.
삼각돛을 단 삼본 마스트 범선. 스미르나와 트리에스테, 나폴리를 거쳐 돌아온 파라옹 호였다.
이상한 것은 속도였다. 이프 성을 돌아 포구로 다가오면서도, 배는 어쩐지 느리고 무겁게 움직였다.
부두에 사람이 모여들었다. 마르세유에서 배가 들어오는 일은 언제나 구경거리였다. 하물며 이 도시 선주의 배라면 더했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돛을 반쯤 접은 채 조심스레 다가오는 그 모습에, 사람들은 까닭 모를 불안을 느꼈다. 뱃일을 아는 이들이 먼저 수군거렸다.
"무슨 일이 있었나."
배 자체에 문제는 없었다. 닻은 뱃전에 얌전히 걸렸고, 조타는 흠잡을 데 없었다. 키를 잡은 도선사 곁에 한 젊은이가 서 있었다.
날렵한 눈으로 배의 움직임을 하나하나 살피며, 그는 도선사의 지시를 되받아 외쳤다. 열여덟이나 스물쯤 되었을까. 검은 눈에, 까마귀 날개처럼 검은 머리를 한 청년이었다.
위태로운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는 침착함이 몸에 배어 있었다.
군중 속 한 사람이 그 불안을 견디지 못했다. 배가 항구에 닿기를 기다리지 않고, 작은 거룻배에 뛰어올라 파라옹 호 쪽으로 저어 갔다.
젊은이가 그를 알아보았다. 키잡이 곁을 떠나, 모자를 벗어 든 채 뱃전으로 몸을 기울였다.
"당테스, 자넨가!"
거룻배의 사내가 외쳤다.
"무슨 일인가? 배가 어째서 이리 침울한 겐가?"
"큰일을 당했습니다, 모렐 씨."
당테스의 목소리에 슬픔이 묻어났다.
"저에게는 특히 더 그렇습니다. 치비타베키아 앞바다에서 르클레르 선장님을 잃었습니다."
선주의 얼굴이 굳었다.
"화물은?"
"모두 무사합니다. 그 점은 만족하실 겁니다."
당테스가 잠시 말을 끊었다.
"하지만 선장님은……"
"어쩌다 그리 됐나."
"열병이었습니다. 사흘을 지독히 앓다 가셨습니다."
당테스는 선원들을 향해 소리쳤다.
"돛 걷어라!"
여덟인지 열인지 되는 선원들이 일제히 제자리로 뛰었다. 제대로 움직이는지 눈으로 확인한 뒤, 청년은 다시 선주를 돌아보았다.
"나폴리를 떠나실 때부터 안색이 어두우셨습니다. 항구장과 오래 이야기를 나누신 뒤였지요. 하루 만에 열이 오르더니, 사흘째 되던 날 눈을 감으셨습니다."
당테스의 얼굴에 씁쓸한 웃음이 스쳤다.
"영국과 십 년을 싸운 분이, 결국 남들처럼 침상에서 가시다니요."
"에드몽, 우리는 다 죽는 목숨이야."
모렐의 얼굴이 조금씩 풀렸다.
"늙은 사람은 젊은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는 법이지. 안 그러면 승진이라는 게 어디 있겠나. 화물까지 무사하다니 더 바랄 게 없네."
"제 말을 믿으십시오. 이번 항해의 이익이라면, 이만오천 프랑을 부른다 해도 넘기지 마십시오."
그때 배가 원형 탑을 막 지났다. 당테스가 다시 외쳤다.
"윗돛과 삼각돛 내려라! 뒷돛 걷어 올려!"
선원들은 군함에서처럼 척척 따랐다. 마지막 호령과 함께 돛이 모두 내려가고, 배는 알아차리기 어려울 만큼 천천히 나아갔다.
"올라오시지요, 모렐 씨."
당테스가 선주의 조바심을 읽고 말했다.
"선창에서 당글라르 씨가 나옵니다. 회계원이니 자세한 건 그가 말씀드릴 겁니다. 저는 닻을 내리고 배를 상복으로 갈아입혀야 합니다."
모렐은 두 번 청할 것도 없이, 당테스가 던진 밧줄을 붙잡고 뱃전을 기어올랐다. 청년은 제 일을 하러 돌아섰다.
이야기는 당글라르에게 넘어갔다.
스물대여섯쯤 되는 사내였다. 인상이 좋지 못했다. 윗사람에게는 굽실거리고 아랫사람에게는 뻣뻣했다.
배에서 돈을 쥔 자리인 데다 그 태도까지 더해져, 선원들은 그를 꺼렸다. 에드몽 당테스가 사랑받는 만큼, 그는 미움받았다.
"모렐 씨, 우리가 당한 불행은 들으셨겠지요."
"그래, 그래. 가엾은 르클레르 선장. 용감하고 정직한 사람이었지."
"뛰어난 뱃사람이기도 했습니다. 모렐 상회 같은 큰 상관의 이익을 맡기에 부족함이 없는 분이었지요."
당글라르가 말끝에 힘을 주었다. 모렐은 닻 내리는 광경을 지켜보는 당테스를 흘긋 보았다.
"뱃사람이 꼭 그렇게 나이가 들어야 제 일을 아는 건 아니지 싶네. 저 에드몽만 봐도 누구 가르침이 필요해 보이지 않으니."
"그렇지요."
당글라르가 에드몽을 쏘아보았다. 그 눈에 증오가 번득였다.
"젊은 데다 자신만만합니다. 선장님 숨이 채 끊어지기도 전에, 누구와 상의도 없이 지휘를 잡더군요. 게다가 마르세유로 곧장 오면 될 것을, 엘바 섬에서 하루 반나절이나 허비했습니다."
"지휘를 잡은 건 항해사로서 당연한 의무였네. 엘바에서 지체한 건, 배를 고칠 일이 없었다면 잘못한 일이겠지."
"배는 저처럼 멀쩡했습니다. 하루 반나절은 순전히 변덕이었지요. 뭍에 오르고 싶어서요, 그뿐입니다."
"당테스!"
모렐이 청년을 불렀다.
"이리 좀 오게!"
"곧 가겠습니다."
당테스가 대답하고 선원들에게 외쳤다.
"닻 내려라!"
닻이 곧장 떨어지고, 사슬이 요란하게 풀려 나갔다. 당테스는 도선사가 있는데도 조작이 끝날 때까지 제자리를 지켰다.
"조기 게양하고 활대 정렬하라!"
"보십시오."
당글라르가 말했다.
"벌써 제가 선장이라도 된 줄 압니다."
"사실 그런 셈이지."
모렐이 답했다.
"모렐 씨와 동업자분 서명만 빠졌을 뿐이겠지요."
"그걸 왜 못 받겠나. 젊긴 해도, 내 눈엔 경험이 넉넉한 뱃사람으로 보이는데."
당글라르의 이마에 그늘이 스쳤다.
닻이 자리를 잡았다. 당테스가 다가왔다.
"부르셨습니까, 모렐 씨. 이제 배가 닻을 내렸으니 저는 자유입니다."
당글라르가 한두 걸음 물러섰다.
"엘바 섬엔 어째서 들렀는지 물어보려 했네."
"저도 모릅니다."
당테스가 답했다.
"르클레르 선장님의 마지막 분부였습니다. 임종하시며 베르트랑 원수께 전하라고 소포 하나를 맡기셨습니다."
"그럼 원수를 직접 만났나?"
"예."
모렐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당테스를 한쪽으로 끌고 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황제께서는…… 어떠시던가?"
"뵙기로는 안녕하셨습니다."
"자네, 황제를 뵈었단 말인가?"
"원수의 처소에 계실 때 들어오셨습니다."
"말도 나눴고?"
"먼저 말을 거신 건 그분이셨습니다."
당테스가 미소 지었다.
"뭐라 하시던가?"
"배에 관해 물으셨습니다. 언제 마르세유를 떠났는지, 어떤 항로였는지, 화물이 무엇인지. 짐만 없었다면, 제가 선주였다면 사들이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항해사일 뿐이고 배는 모렐 상회 것이라 말씀드렸지요. 그러자 이러시더군요. '아, 그 집을 알지. 대를 이은 선주 가문이야. 내가 발랑스에 주둔했을 때 같은 연대에 모렐이 있었네.'"
"그렇고말고!"
선주가 기뻐 소리쳤다.
"폴리카르 모렐, 내 숙부님일세. 나중에 대위가 되셨지. 자네가 전해 드리게. 황제께서 기억하시더라고. 노병의 눈에 눈물이 맺힐 걸세."
모렐이 에드몽의 어깨를 정답게 두드렸다.
"잘했네, 당테스. 선장의 분부대로 엘바에 들른 건 옳은 일이었어."
그러다 목소리를 조금 낮추었다.
"다만 자네가 원수께 소포를 전하고 황제와 말을 나눈 게 알려지면, 성가신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 조심하게."
"그게 어째서 성가신 일이 됩니까?"
당테스가 물었다. 영문을 모르는 얼굴이었다.
"저는 무얼 나르는지도 몰랐고, 황제께서도 아무나 붙들고 물으실 법한 것만 물으셨는데요."
당테스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위생 검역관과 세관원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그는 승강구로 향했다.
그가 자리를 뜨자 당글라르가 다시 선주에게 다가왔다.
"엘바에 오른 이유는 흡족하게 설명하던가요?"
"아주 흡족했네."
"다행이군요. 동료가 제 본분을 저버렸다 생각하면 유쾌하지 않으니까요."
"당테스는 제 본분을 다했네. 지체한 건 르클레르 선장의 지시였어."
당글라르가 잠시 뜸을 들였다.
"선장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당테스가 선장 편지를 전하지 않던가요?"
"내게? 아니. 편지가 있었나?"
"소포 말고도, 선장이 편지 한 통을 그에게 맡긴 걸로 압니다."
"무슨 소포 말인가, 당글라르?"
"당테스가 포르토페라이오에 두고 온 그것 말입니다."
"당테스가 거기 두고 올 소포가 있었다는 걸 자네가 어찌 아나?"
당글라르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반쯤 열린 선장실 문 앞을 지나다, 선장이 당테스에게 소포와 편지를 건네는 걸 보았습니다."
"내겐 그런 말이 없었네만, 편지가 있다면 내게 주겠지."
당글라르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모렐 씨, 부탁이 있습니다. 이 일은 당테스에게 한마디도 마십시오. 제가 잘못 봤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때 청년이 돌아왔고, 당글라르는 슬그머니 물러났다.
"이보게 당테스, 이제 자유인가?"
"예."
"오래 붙들리지 않았군."
"검역관에게 적하 목록 사본을 넘겼고, 나머지 서류는 도선사 편에 보냈습니다. 이제 여기 일은 끝났습니다."
"그럼 나와 저녁이나 함께하지."
"송구하지만 사양하겠습니다, 모렐 씨. 첫 걸음은 아버지께 드려야 합니다. 베풀어 주신 호의는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옳지. 자네가 효자인 건 진작 알았네."
당테스가 조심스레 물었다.
"아버지는…… 어떻게 지내시는지 아십니까?"
"잘 계실 걸세, 에드몽. 근래 뵙지는 못했네만."
"방에만 틀어박혀 계시는 분이라서요."
당테스가 옅게 웃었다.
"제 아버지는 자존심이 강하십니다. 끼니가 떨어져도, 하늘 말고는 누구에게도 아쉬운 소리를 안 하실 분이지요."
"그럼 첫 방문을 마친 뒤엔 우리 쪽을 기대해도 되겠나?"
"한 번 더 양해를 구합니다, 모렐 씨. 아버지 뒤엔, 무엇보다 서둘러 가야 할 곳이 하나 더 있어서요."
"참, 그렇지."
모렐이 웃었다.
"카탈랑 마을에 자네를 아버지 못지않게 애타게 기다리는 이가 있었지. 어여쁜 메르세데스 말일세."
당테스의 얼굴이 붉어졌다.
"놀랄 일도 아니야. 그 아가씨가 세 번이나 찾아와 파라옹 호 소식을 물었으니까. 에드몽, 자네 아주 예쁜 정인을 두었더군!"
"정인이 아닙니다."
젊은 뱃사람이 정색했다.
"제 약혼자입니다."
"그게 그거 아닌가."
모렐이 미소 지었다.
"저희에겐 다릅니다."
당테스가 답했다.
모렐은 더 붙들지 않았다.
"가 보게, 에드몽. 행운을 비네."
당테스는 거룻배에 뛰어올랐다. 뱃머리에 앉아 카느비에르 거리에 내려 달라 이르자, 두 사공이 노를 저었다. 작은 배는 항구를 메운 수백 척 사이로 재빨리 미끄러져 나갔다.
선주는 미소 띤 얼굴로 그 뒷모습을 좇았다. 청년이 부두에 뛰어내려 군중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돌아서던 모렐의 눈에, 등 뒤에 선 당글라르가 들어왔다. 지시를 기다리는 척했지만, 그 역시 젊은 뱃사람의 뒷모습을 좇았다.
같은 청년을 좇는 두 시선이었다. 그러나 그 눈빛에 담긴 것은 하늘과 땅만큼 달랐다.
당테스는 알지 못했다. 이 항구에서, 자신을 배웅한 두 눈 가운데 하나가 이미 무엇을 벼르기 시작했는지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