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2화. 창 너머의 사람들
다시는 저런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다.
돌에 맞아 찢긴 살갗이 아직도 욱신거렸다. 사람이라는 것들은 전부 나를 저렇게 보는구나 싶었다.
그런데도 지켜보고 싶었다. 창틈으로 새어 나오던 그 다정한 몸짓들이, 자꾸 눈앞에 어른거렸다. 두려움과 갈망이 동시에 가슴을 붙들었다.
아침이 밝자마자 은신처를 살폈다.
헛간은 이웃한 집의 뒤편에 바짝 붙어 있었다. 한쪽은 돼지우리, 다른 쪽은 맑은 물웅덩이로 막혀 있었다. 뚫린 틈으로 기어들어 왔던 자리였다.
낮고 좁아 몸을 웅크려야 했지만, 지붕이 있다는 것만으로 감지덕지했다. 어제까지 잠들던 숲과는 비교도 안 됐다.
돌과 나무 조각으로 그 틈을 메웠다. 다만 필요할 때 도로 뺄 수 있게 여지는 남겨두었다. 빛은 돼지우리 쪽 틈으로만 들어왔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깨끗한 짚을 깔아 잠자리를 만들었다. 어제까지의 헛간과는 딴판이었다.
멀리 사람 그림자가 보이자 얼른 몸을 숨겼다. 지난밤의 그 일을 잊을 수 없었다. 하루치 먹을 것으로 빵 한 덩이를 슬쩍 가져다 두었고, 손으로 뜨는 것보다 나은 컵도 하나 마련해두었다.
바닥은 한 뼘쯤 떠 있어 늘 말라 있었다. 집의 굴뚝과 붙어 있어 온기도 돌았다.
이만하면 됐다. 무슨 일이 생기기 전까지는 여기 머물기로 했다.
황량한 숲, 빗물이 새던 나뭇가지, 축축한 흙바닥과 비교하면 이곳은 낙원이었다. 아침을 배불리 먹으니 마음까지 든든해졌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안도감이었다.
아침을 먹고 물을 뜨러 널빤지를 치우려던 참이었다.
발소리가 들렸다. 작은 틈으로 내다보니, 물통을 머리에 인 젊은 여자가 지나갔다.
몸가짐이 조심스러웠다. 옷은 남루했다. 파란 치마와 리넨 저고리, 그것이 전부였다. 땋은 머리엔 장식 하나 없었다.
표정은 참을성 있어 보였지만 어딘가 슬퍼 보이기도 했다. 저렇게 애쓰는데도 저 얼굴이라니, 눈을 뗄 수 없었다. 어딘지 낯이 익다는 착각마저 들었다.
여자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얼마 후 돌아왔는데, 통엔 우유가 반쯤 담겨 있었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걸음으로 오가는 걸 보니 정해진 일과인 듯했다.
걸음이 무거워 보였다. 그때 한 남자가 다가와 통을 받아 들었다. 얼굴에 수심이 짙었다.
몇 마디 소리를 내며 통을 대신 들고 집으로 향했다. 여자도 뒤따랐다. 둘 사이엔 말은 없었지만 서로를 향한 조심스러움이 오갔다.
잠시 후 남자가 다시 나타났다. 손에 연장을 든 채 집 뒤편 들판을 가로질렀다. 여자는 집 안팎을 오가며 분주했다.
하루가 그렇게 흘러가는 걸 지켜보는 것만으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헛간 안은 좁고 어두웠지만, 그 틈으로 보이는 세상은 넓기만 했다.
거처를 살피다가 발견한 게 있었다.
원래 창이었던 자리가 나무판으로 막혀 있었는데, 그중 하나에 아주 작은 틈이 나 있었다. 눈을 대면 안이 들여다보였다. 처음엔 그저 궁금해서 대본 것이었다.
하얗게 칠해진 작은 방이었다. 세간은 거의 없었다. 한쪽 구석, 작은 불가에 노인 하나가 손에 얼굴을 묻고 앉아 있었다. 초라한 방이었지만, 그 안의 온기만은 선명하게 느껴졌다.
여자가 방을 정리하다가, 서랍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고 노인 곁에 앉았다. 노인이 악기를 들어 연주하기 시작했다. 지빠귀나 나이팅게일의 노래보다도 고운 소리였다.
아름다운 것을 처음 보았다. 이런 것을 아름답다고 부른다는 것을, 그 순간엔 알지 못했다. 그저 가슴 한쪽이 저려왔을 뿐이다.
은빛 머리와 자애로운 얼굴이 절로 경의를 품게 했다. 여자의 다정한 몸짓은 애정을 불러일으켰다.
구슬픈 곡조가 흘렀다. 여자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노인은 알아채지 못하다가, 여자가 소리 내어 흐느끼자 몇 마디를 건넸다. 여자가 하던 일을 놓고 노인 앞에 무릎을 꿇었다.
노인이 여자를 일으켜 세우며 미소를 지었다. 그 다정함에, 배고픔도 추위도 아닌 낯선 감정이 밀려왔다. 고통과 기쁨이 뒤섞인 감정이었다.
견딜 수 없어 창에서 물러났다. 그 방을 다시 볼 자신이 당장은 없었다.
얼마 후 남자가 장작을 지고 돌아왔다. 여자가 문가에서 짐을 받아 불 위에 올렸다. 둘은 구석으로 가 빵과 치즈를 나누어 보였다. 여자는 밭으로 나가 뿌리채소를 캐 왔다.
남자는 다시 밭으로 나가 땅을 팠다. 한 시간쯤 지나 여자가 합류했고, 둘은 함께 집으로 들어갔다.
혼자 있던 노인의 낯빛도 두 사람이 돌아오자 밝아졌다. 셋이 둘러앉아 식사를 마쳤다. 조촐한 상이었지만 오가는 눈빛만은 넉넉해 보였다. 저런 식탁이라면 배가 덜 불러도 좋을 것 같았다.
식사 후 노인은 남자의 팔에 기대어 볕을 쬐며 걸었다. 은빛 머리에 자애로운 얼굴의 노인과, 균형 잡힌 이목구비에 짙은 수심을 띤 젊은 남자. 그 대비가 무엇보다 아름다웠다.
밤이 왔지만, 그 집엔 불빛을 이어가는 방법이 있었다. 어둠이 와도 그들을 지켜보는 즐거움이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날 저녁, 노인이 다시 악기를 들었다. 연주가 끝나자 남자가 단조로운 소리를 냈다. 악기 소리도, 새소리도 아닌 낯선 리듬이었다. 같은 억양이 일정한 간격으로 반복되었다.
훗날에야 그것이 소리 내어 글을 읽는 것임을 알았다. 그 순간엔 그저 알 수 없는 소리였을 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세 사람이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었다. 하루가 그렇게 저물었다.
짚더미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낮 동안 본 것들이 떠나지 않았다. 그 다정한 몸짓들이 자꾸 마음을 붙잡았다. 함께하고 싶었지만 감히 다가설 수 없었다.
지난밤 마을에서 당한 일을 잊을 수 없었다. 돌팔매와 비명, 그 얼굴들이 아직도 생생했다. 무슨 결심을 하든, 지금은 조용히 여기 머물며 저들을 움직이는 이유를 알아내기로 했다. 서두를 이유는 없었다.
이튿날, 세 사람은 해도 뜨기 전에 일어났다.
여자가 집을 정돈하고 음식을 준비했다. 남자는 첫 끼를 마치고 밖으로 나갔다.
이날도 전날과 다르지 않았다. 남자는 온종일 밖에서 일했고, 여자는 안에서 온갖 노동에 매달렸다. 청소하고, 불을 살피고, 음식을 짓고, 노인의 곁을 지켰다. 손이 쉬는 법이 없었다.
노인은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그제야 알아차렸다. 지팡이를 짚는 걸음도, 소리를 먼저 듣고 반응하는 몸짓도, 전부 그래서였다. 한가할 때면 악기를 연주하거나 생각에 잠겼다.
두 사람이 노인을 대하는 태도엔 흠잡을 데가 없었다. 사소한 일까지 정성을 다했고, 노인은 자애로운 웃음으로 답했다.
날이 갈수록 셋을 향한 마음이 깊어졌다. 처음엔 신기함이었는데, 어느새 그리움과 비슷한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나도 저 안에 끼어 앉아 있는 상상을 몇 번이고 했다. 상상 속에서만은, 아무도 놀라 도망치지 않았다.
그들이 완전히 행복한 건 아니었다.
남자와 여자는 종종 따로 떨어져 눈물을 보였다.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마음이 쓰였다. 저리도 다정한 이들도 불행하다면, 나 같은 존재가 비참한 것도 이상할 게 없었다. 오히려 그게 당연해 보였다.
하지만 궁금했다. 저들은 좋은 집과 온갖 풍족함을 가졌다. 추우면 불을 쬐고, 배고프면 맛있는 걸 먹었다.
좋은 옷을 입었고, 무엇보다 서로 마주 보며 정을 나눌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우는가. 저 눈물이 정말 아픔을 뜻하는 걸까.
처음엔 답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계속 지켜보다 보니, 낯설던 것들이 하나씩 풀리기 시작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이유 하나를 알아냈다. 가난이었다.
그들의 끼니는 텃밭 채소와 젖소 한 마리의 우유가 전부였다. 겨울엔 그 젖소조차 먹일 게 부족했다. 굶주림은 유독 젊은 두 사람의 몫이었다. 노인 앞에는 음식을 놓으면서 정작 자신들 몫은 남기지 않는 날이 여러 번이었다.
그 다정함에 마음이 흔들렸다. 가진 것을 나눌수록 정작 자신들은 줄어드는 삶이었다. 그런데도 저들의 얼굴엔 원망이랄 게 없었다. 나였다면 저럴 수 있었을까, 알 수 없었다.
그동안 밤마다 그들의 식량을 조금씩 훔쳐 먹었다. 처음엔 죄책감이랄 것도 없었다. 그저 살기 위해 하는 일이었다. 그들도 넉넉해 보였으니, 아쉬울 게 없을 거라 여겼다.
그것이 그들에게 고통을 준다는 걸 안 순간, 손을 뗐다. 대신 근처 숲에서 딴 열매와 뿌리로 배를 채웠다. 허기는 그대로였지만, 마음은 오히려 가벼워졌다. 배고픔쯤은 견딜 만했다.
돕고 싶었다. 그저 지켜만 보는 것으로는 부족했다. 무엇이든 저들을 위해 하고 싶다는 마음이 갈수록 커졌다.
남자가 매일 장작을 구하러 다니는 걸 눈여겨보았다. 도끼를 쓰는 법도, 나무를 쪼개는 요령도 몇 번 지켜보는 것만으로 익혔다. 힘이라면 자신 있었다. 밤이면 몰래 그의 연장을 빌려 며칠 치 땔감을 마련해 문 앞에 쌓아두었다.
처음 그렇게 한 다음 날 아침, 여자가 문을 열다 말고 놀라 소리쳤다. 남자도 다가와 함께 놀랐다. 둘이 주고받는 소리엔 당혹스러움과 반가움이 함께 섞여 있었다. 누가 이런 일을 했는지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그날 남자는 숲으로 가지 않고 집을 고치고 밭을 돌보며 하루를 보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기뻤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이, 살아 있다는 느낌을 처음으로 주었다. 그것만으로 며칠 치 배고픔쯤은 아무렇지 않았다.
그 뒤로도 밤마다 몰래 장작을 날랐다. 들키지 않으려 발소리를 죽였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달이 몇 번이나 차고 기우는 동안, 하루하루가 비슷하게 흘렀다. 남자는 밖에서, 여자는 안에서, 노인은 자리에 앉아 그 둘을 기다렸다. 지켜보는 일에도 이제는 나름의 리듬이 생겼다.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어느새 미리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 더 큰 것을 알아챘다.
저들은 소리로 서로의 생각과 마음을 주고받았다. 그 소리 하나에 상대의 낯빛이 기쁨으로도, 슬픔으로도 바뀌었다. 손짓도 몸짓도 없이, 오직 입에서 나오는 소리만으로 서로의 속을 읽어냈다.
신묘한 재주였다. 저것만 알면, 나도 저들에게 무언가를 전할 수 있을지 몰랐다. 이름도 얼굴도 없는 나를, 저 소리 하나로 저들에게 알릴 수 있을지도 몰랐다. 간절히 배우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애써도 실마리가 잡히지 않았다. 말은 너무 빨랐고, 눈에 보이는 것과 어떻게 이어지는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같은 소리가 다른 뜻으로 쓰이는 것도 같았고, 다른 소리가 같은 것을 가리키는 것도 같았다.
몇 번이고 귀를 기울였다. 매번 처음보다 나을 게 없었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다. 저 소리를 알아듣는 날이 오면, 나도 저들 앞에 설 수 있을지 몰랐다. 그때까지는 그저, 창틈에 눈을 대고 듣고 또 듣는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야 얼마든지 있었다.
